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이 경남 일정 이튿날인 12월 2일 진주를 찾았습니다. 오후 1시 도보행진 시작 지점인 진주시청 앞에는 수십명의 참가자들이 더 나은 농산어촌을 위한 각자의 바람을 담은 손팻말을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엄마들, 아빠들, 농민들, 노동자들, 어민, 소비자, 환경운동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우시는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며 도보행진 출정식을 시작한 소희주 진주텃밭 대표는 거창, 고성, 산청, 의령, 하동, 함양, 합천 등지에서 모인 참가자들을 한 지역씩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대표 인사에 나선 김장락 진주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는 "오늘 진주 행사가 잘 끝날뿐만 아니라 이 행사가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린 이 위기를 극복하고 실천하고 주장하고 요구하는 시민 연대체로서 굳건하게 오랫동안 활동해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모인 만큼 손에 든 구호도 다양했습니다. 진주 도보행진에는 어떤 바람들이 모였는지 잠시 살펴볼까요?
'농민 행복', '농촌이 살아야 도시가 삽니다!', '농업과 농촌이 나라의 근본이다' 등 농업, 농촌, 농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많이 보입니다.
합천에서 온 참가자들이 합천 삼가면, 쌍백면 일원에 건립 추진중인 LNG·태양광발전단지를 반대하며 토지수용법 개정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습니다.
육류, 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은 인류의 식량생산 활동으로부터 기인한 온실가스 배출량과 토지이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하죠. 완전채식을 통해 지구를 구하자는 메시지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진주 도보행진은 진주시청에서 시작해 진주소방서 앞에서 마무리됐습니다. 함께 걸어주신 많은 참가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후 2시, 진주 노래패 맥박의 감미로운 노래가 진주민회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MBC컨벤션진주 대연회장의 넓은 공간이 많은 주민들로 가득 들어찼습니다. 진주민회에서는 농민소득, 지역의 의료공백, 농협개혁, 농지전용, 지역 공무원, 식생활교육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농촌 면지역에서는 일을 하다 손가락을 다쳐도
그거 꿰맬 의사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박미정 진주시여성농민회 부회장은 농업과 여성 돌봄 노동, 농촌 지역 의료서비스 접근성 부족 문제에 관해 발표했습니다. 그는 군 지역에 산부인과, 특히 아기를 받는 산과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응급상황 발생시 치료 가능하도록 각 면소재지당 공공의료직원을 최소 1명씩 배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경남 고성의 우동완 님 또한 "실질적으로 농촌 면지역에서는 일을 하다 손가락을 다쳐도 그거 꿰맬 의사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민회를 거쳐오며 여러 사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던 도올 김용옥과 소빈 박진도는 농촌의 의료공백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소 의견차를 보였습니다. 소빈 박진도는 농촌에서 근무할 공공의료 인력을 따로 육성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도올 김용옥은 의사협회의 반대로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며 한의사의 역할을 확대하자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시 소빈 박진도는 그런 방법으로도 한의사들이 농촌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농촌의 의료공백 문제를 해결할 해법이 과연 있을까요? 도올 김용옥은 우리가 중국의 맨발의 의사(Barefoot Doctors)로부터 배울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맨발의 의사란 1960-80년대 중국에 있었던 농촌 의료 제도로, 도시와 농촌간 의료서비스 공급 격차가 심화되고 이에 따라 농촌 주민들의 영양실조와 전염병 문제가 심해지자 기본적인 치료와 위생관리가 가능하도록 농부 등을 강도높게 훈련시킨 뒤 농촌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해 농촌의 의료 접근성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던 제도입니다.
경남 사천에서 온 강기갑 전 국회의원은 "농업과 농촌, 농민은 생명 산업이요, 생명의 창고요, 국민의 어머니"라며 국민들의 밥상에 공해 산업이 들어오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에는 3년 전 건설 폐기물을 하루에 800톤씩 파쇄하는 공장이 들어와 소송이 진행중이라고 했습니다. 김장락 진주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는 태양광 패널 등을 관공서나 도시민 주거지에는 설치하지 않으면서 농지부터 일방적으로 추진해 농민과의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며, 농민들과 협의하고 농민들이 이끌어가도록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땅을 내주든 내주지 않든 자기 의사 표명이 돼야 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땅이 들어가 있는 겁니다.
한편 창원에 이어 진주에서도 합천에서 추진중인 LNG·태양광발전단지와 관련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홍근대 LNG·태양광발전단지건립반대투쟁위원회 홍보국장은 주민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채 사업이 추진된다며 절차상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발전소 건설을 위한 토지 수용 과정에서 "14일 동안 토지 수용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라고 고지하는데 그냥 홈페이지에 올리고 끝"이라며 "적극적인 반대 의견을 제출하지 않으면 다 동의한 걸로 간주해버린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예전처럼 밀어붙이기식 개발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며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는 토지수용법을 개정할 것, 지주의 의사표현이 없는 경우 사업에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동의서 제도를 개선할 것, 농업을 태양광을 포함한 모든 공익사업에 우선하는 최우선 공익사업으로 국가가 보호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집만 준다고 학교만 있다고 내려옵니까?
먹고 살게 있어야 내려오지.
농민들이 마음놓고 농사지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희망하는 분들의 발언도 이어졌습니다.
진주 이반성면에서 온 농부 박은영 님은 농부가 농업에만 종사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할 것, 그리고 농약을 뿌리던 농민이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기간 동안 농민의 생계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그는 깨끗하고 예쁜 농산물에 대한 개념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가 예쁜 겁니까. 뭐가 건강한 겁니까. 소비자들 유기농 좋아해요. 그런데 그분들은 세밀해. 콩 하나 조금 껍질 벗겨진 것도 그냥 B급인 거예요. 저희가 콩을 1시까지 밤새 골라요. 골라가지고 쭉정이는 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요. 이거 농사지어서 몇십만 원 버는 거예요. 몇십만 원 벌어서 생계 되겠습니까. 보험료도 못 냅니다."
우동완 님은 현재 대규모 축산단지가 있어야만 퇴비사를 건립할 수 있도록 한 규제를 풀고 유기농업을 하는 농업인이 필요로 하는 퇴비를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퇴비사를 건립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대규모 가공사업 관련해 퇴직 공직자가 전관예우로 특혜받지 않도록 규제해달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경남 사천 주민 이선복 님은 친환경 농업단지 내 농지를 도시 자본이 매입해 관행농사를 짓거나 건물을 지어 친환경 농지보존에 애로사항이 있으나 상위법이 없어 이를 막을 조례를 제정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경남 하동의 김미희 님은 "행정에서 펜대만 잡는" 공무원이 아닌, 풀과의 전쟁을 벌이는 여름날 "필드에 들어와 잡초를 뜯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습니다.
농협개혁과 관련해 김준섭 진주시농민회 대곡농민회 사무장은 농협이 금융기관으로 변질돼 농산물 판로개척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합장 선거나 채용 과정에서 각종 비리를 저지른다고 비판했습니다. 소빈 박진도는 농민들 대부분이 농협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데다 투표율이 90%에 이르는데도 계속해서 나쁜 조합장이 선출돼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고, 이에 대해 강신철 전 진주축산업협동조합 조합원은 출마할 때와 당선된 후 조합장의 얼굴이 싹 바뀐다며 이래서는 농협이 살아날 수 없다고 소리높였습니다.
민영수 산청로컬푸드협동조합 상임이사는 농민의 농산물을 도시의 소상공인이 사주고, 도시 소상공인의 제품을 농민이 사주는 네트워크형 상생시장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퀘벡, 볼로냐,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모델이 다른 국가 및 지역으로 확산되지 않는 이유가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협동조합 대신 농민과 지역 소상공인들이 직접 상호거래를 하는 보편모델을 수립해 확장성을 확보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한편 경남 하동에서 참석한 황종삼 한국자율관리업 경상남도 연합회장은 "수산물도 식량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어촌의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자고 말했습니다.
건강한 먹거리 시민을 양성해 행복한 개인의 삶을 디자인하는 게
저희 식생활교육의 목표예요.
농촌 교육과 관련해 전남 영암에서 참석한 김창오 님은 조례를 제정해 관내 면소재지 내 중학교에 진학하는 농촌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들보다 더 많은 장학금을 지급해 지역사회가 지역의 학생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지역에 대한 애착심과 자긍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비자 연대와 관련해 이정옥 경남녹색당 운영위원장은 90년대 중반 우루과이라운드, 2000년대 한미 FTA,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이슈를 예로 들며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전국민적인 관심과 연대가 있었지만 최근 10년간 농촌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데 그런 국민적인 인식과 연대감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한편 천경자 식생활교육진주네트워크 대표는 1회성 체험식 교육에 그치는 식생활교육의 한계를 지적하며 식생활교육을 통해 바른 식생활의 습관화가 가능하도록 의무교육으로 전환해 저학년부터 지속적인 반복 및 심화학습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식생활교육을 통해 바른 식습관을 기르는 것을 넘어서 "농어촌 문제와 함께 식생활교육이 어우러져 기후위기 대응까지 같이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라도 농지와 산림을 파괴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생산주의 정책에서
환경을 살리는 농어업으로 전환해가자.
민회 참석자들의 뜨거운 열기로 예정되었던 시간을 훌쩍 넘어서까지 이어졌던 진주민회였습니다. 물론 이제까지 진행되었던 모든 민회가 풍성한 토론으로 길어졌지만요. 진주민회는 가장 많은 참석자들이 발언을 했던 민회이기도 합니다.
진주 선언문에는 삼강의 방향성과 오략의 구체적 실천으로 농촌이 농민이 행복하고, 청년이 모이고, 귀농귀촌인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는 공간이 된다면 우리 모두의 행복지수도 올라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나, 농어촌 주민들에게 의료, 교육, 주고, 돌봄, 교통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농어촌 주민의 행복권을 보장하라!
하나, 농림어업의 환경적, 생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공익적 직접지불을 대폭 확대하라!
하나, 국민 누구나 질 높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먹을거리 기본법을 제정하라!
하나, 지역개발사업 예산을 대폭 줄이고, 그 돈을 농촌주민들에게 '국토·환경·문화·지역지킴이 수당'으로 지급하라!
하나, 주민 스스로가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고 책임지도록 지역자치를 활성화시키자!
- '진주 선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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