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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진 결과

[행진후기] 경기 수원 대행진(11/19)

by mihymae 2021. 11. 29.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이 지난 11월 19일, 인구 124만의 도시 수원에 찾아갔습니다.

수원은 우리나라 농업사에서 의미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농업을 일본 제국주의 체제로 편입시키기 위해 1906년 설치된 농업연구기관인 권업모범장과 그후 1962년 들어선 농촌진흥청이 모두 수원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110년 정도 앞서서는 정조가 허허벌판이던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인공저수지인 만석거와 축만제(서호)를 만든 뒤 인근에 각각 대유평과 서둔이라는 둔전을 설치해 농업연구를 하도록 했던 곳입니다. 특히 만석거는 정조가 화성을 축조하던 당시 극심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화성 축조를 잠시 중단하고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만석거 덕분에 수원의 백성들은 가뭄이 든 해에도 무사히 농사지어 배를 곯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성을 향한 정조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수원입니다. 지금은 수원시민의 산책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만석거 풍경


오후 2시, 도보행진 참여자들이 수원화성 장안공원에서 모였습니다. 풍물굿패의 상쇠가 마이크를 잡고 참여자의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먹을거리 위기다 하면 농촌을 살릴 생각은 안 하고 농산물 수입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런 사람들한테 뜨거운 팥죽을 끼얹어서 혼내주자고 걸쭉하게 목청을 높였습니다.

풍물패가 도보행진의 시작을 알립니다.
도보행진 진행을 맡은 좌수일 한살림수원 사무국장(왼쪽)과 남궁진영 수원건강먹거리시민네트워크 대표(오른쪽)


풍물패의 신나는 공연이 끝난 후 간단하게 출정식을 가졌습니다. 도올 김용옥, 소빈 박진도를 비롯해 수원대행진 추진위의 김덕일 경기도 먹거리위원회 위원장, 김천수 공동위원장, 남궁진영 수원시민건강먹거리네트워크 대표가 간단하게 인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남궁진영 대표는 "농민들은 정말 힘들게 농사지어도 손에 쥐는 게 없어서 빚만 쌓여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하며 "누구나 다 자유롭게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을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어떤 사람은 배가 부르고 어떤 사람은 가진 게 없어 빚더미에 오르는 현실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이 만들어내는 물결이 국민들에게, 정치인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출정식에서 인사 중인 김덕일 경기도 먹거리위원회 위원장


늦가을 풍경이 아름다운 수원 장안공원에서 도보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장안공원에서 시작한 수원 도보행진


행진대가 장안문을 통과합니다.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북문이자 한양에서 정조가 행차할 때 통과하던 정문입니다.

장안문을 통과하는 행진대


이날 도보행진은 장안공원에서 출발해 장안문을 지나 정조로를 따라 걸은 후 매향교를 건너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마무리했습니다. 도보행진을 준비하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조로 행진
도보행진 참여자들과 함께한 강강술래

 


 

박영재 수원씨앗도서관장(왼쪽)과 박종아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오른쪽)


도보행진을 마친 뒤 김찬수 공동위원장의 사회로 수원민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참석자의 자유발언을 듣기에 앞서 박영재 수원씨앗도서관장이 '농업도시 수원의 어제와 오늘', 박종아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이 '공유냉장고'를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박영재 관장은 조선시대 때부터 이미 대유평(장안구 정자2동 일대)과 서둔(권선구 서둔동 일대)에 둔전이 설치돼 농업연구가 이뤄졌던 곳이 수원이라며 이런 곳에 일제강점기 때 권업모범장이 들어서면서 식민지 농업정책의 기지로 전락하고 이후 그 자리에 농촌진흥청이 들어오게 된 역사를 간략하게 짚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생산 기술을 발달시킬까, 생산력을 증가시킬까, 그리고 성장을 촉진할 것인가 이것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정작 농촌,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행복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다"며 수원이 도시이긴 하지만 이 안에서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생산자들이 계속해서 농사지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도록 도시 소비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박종아 사무국장은 수원의 '공유냉장고'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공유냉장고는 쇼케이스 냉장고에 기부자가 사용하지 않은 식재료와 음식을 넣어놓으면 필요한 이웃 주민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사업입니다. 공유냉장고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고 수원에만 있는 게 아니지만 수원의 공유냉장고는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로 수원시 예산 투입 없이 지역의 자원만으로 4년 간 3대에서 34대까지 늘어나 전국적인 모범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발언 중인 참석자들


이날 수원민회에서는 친환경 인증제도의 문제와 수도권 지역 농지투기에 대한 농민들의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평택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다고 밝힌 김덕일 경기도 먹거리위원회 위원장은 자신이 농사짓는 평택 땅 3만 평 중 본인 소유의 땅은 1100평 뿐이고 나머지 2만 8천 평은 서울 사람들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중 비싼 땅은 한 평에 300만 원이라며 이런 땅에서 1천 평 농사를 짓기 위해 땅값으로 30억을 투자하면 쌀 20가마를 얻게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고 분개했습니다. 그는 "땅을 사놓고서 몇 년 지나면 몇 배가 될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진 세상에서 정말 이게 해결 가능한 일인가"라고 말하며, 농지투기를 바로잡겠다고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농민들만 더 큰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소빈 박진도는 현재 농지 문제가 가장 문란해진 곳이 수도권, 특히 수원과 화성이라고 말하며 농지가 가장 잘 이용되기 위해서는 농민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농지가 많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농지가 국가와 대자본에 의해 쉽게 전용되고 임차농들은 생계수단을 빼앗기고 있다며 식량주권을 위해서라도 농지전용이 쉽지 않도록 하고 농지전용으로 인해 생긴 이득은 환수하게끔 농지법 예외조항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농지법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농지가 어떻게 소유되고 있고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대한 전수조사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농지투기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인식이 확고해져야 농지투기가 근절되지, 그렇지 않고 농지를 사두면 언젠가 택지나 공장 용지로 전용돼서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사람들은 투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김상기 파주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은 "농사가 농사짓는 사람들과 도시의 소비자들이 자꾸 분리되면서 생산물에 대해서 표준적인 부분(인증)들을 자꾸 만들어내려고 한다"며 현재는 농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산과정을 평가하듯 인증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소빈 박진도는 친환경 인증제도와 관련하여 현재 친환경인증제가 안전성만을 따지고 있다며 친환경농업이 생태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농산물의 생산과정에 대해 공동체적 신뢰를 바탕으로 보증해야지 국가의 허가를 받은 곳만이 배타적인 권한을 가지고 인증하는 것은 농민들에게도 소비자들에게도 손해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송경호 농민은 농가 수입이 낮아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낮은 인건비를 지급하는 농업이라는 산업에 청년 일꾼들이 진출하지 않는 상황을 불러온다며 농가의 수입이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농업카드 발급으로 농업에 사용되는 모든 비용을 카드로 지불하도록 해 유통비용 뿐만 아니라 생산비용을 투명하게 관리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또한 작목별 생산지도를 제작하여 국가에서 더욱 촘촘하게 농산물 생산량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발언 중인 참석자들


한편 수원민회에는 소비자도 참석해 발언을 했습니다. '먹을거리 시민'으로서 도시농업을 통해 농업의 가치를 알아가고 생협조직을 통해 생산자와 신뢰를 쌓아가는 분들입니다.

수원시 도시농부 박경희 님은 광교산에서 8년 째 다른 시민 35명과 1500평 논농사를 짓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농지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땅이 팔리면 쫓겨나가는 상황으로, 논을 두 번 옮겨서 현재 세 번째 논에서 농사를 짓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논이 계속 논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토종벼를 증식하는 기능과 환경적 기능을 계속할 수 있도록 논을 보호하기를 희망했습니다.

한편 김정한 님은 농촌주민수당 지급에 적극 찬성하지만 도시민들 사이에서 농촌주민수당에 대한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성남시민 이소임 님은 노동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에 땀흘린 만큼 거두는 농촌의 경험을 젊은이들이 한다면 농촌으로의 유입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 자신도 직접 몸으로 노동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 막막한 상황으로 청년들이 조금 더 쉽게 농촌경험에 접근할 수 있도록 경로를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소빈 박진도는 학자금대출 등 돈이 계속 나가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도시의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소임 님의 발언에 농촌주민 수당이 이러한 청년들에게 비빌언덕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밥상 위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현실에 대해 정효진 님은 소비자들이 먹을 기회조차 없이 음식들이 사라지는 것, 농산물이 사라지는 것은 곧 우리 문화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조대왕이 꿈꿨던 새로운 농업도시 수원은 이제 어디에도 의존할 수 없는 고립된 섬이 되었다.
오늘 수원의 식량 자급력은 채 일주일을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원선언문을 낭독하는 수원시민들


수원민회에서도 농지투기, 친환경인증, 농가수입, 농촌주민수당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민회에 참석한 장근 님은 "농촌 문제는 엄청나게 꼬여 있는 실타래"라며 "이것을 푸는 방법이 정말 어떤 원인을 찾아서 분석할 수 있는가. (농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그래서 개벽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의 민회에서 도올 김용옥과 소빈 박진도가 강조해왔듯이 판을 바꾸는 대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농촌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민회를 마친 뒤 수원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도시지역답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존하는 공유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것과 농업과 우리 먹을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활동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식생활교육기본법을 제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첫째,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 활동이 이뤄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농업을 지키는 것이 우리 먹거리의 미래를 지키는 것이며, 기후위기를 막는 길임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도시와 농촌지역이 함께할 공유 경제를 구축하자.

- '수원 선언문' 중에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 수원민회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 1월 19일에는 전국 8도 농산어촌 주민들의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으는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 서울행진이 개최됩니다. 서울행진까지 남은 경남(12/1~2), 충남(12/9~10), 강원(12/14~15) 행진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12월 1일 창원, 12월 2일 진주에서 경남 대행진이 진행됩니다. 전국 대행진의 지역별 민회는 유튜브 '(재)지역재단' 채널에서 실시간 생중계되며, 지역별 대행진 결과는 유튜브 '도올TV' 채널에서 릴레이 방송 예정입니다.

도올TV릴레이 수원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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