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이 11월 23일 과일이 맛있기로 유명한 경북 영천에서 10번째 행진을 마쳤습니다. 화창한 오후 2시 영천역 앞에서 많은 영천 시민들이 서울에서 막 도착한 도올 김용옥과 소빈 박진도를 맞아주었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곧이어 도보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경북 영천 도보행진은 영천역에서 출발해 영천시장과 영동교를 거쳐 민회장소인 영천시민회관에서 마무리됐습니다.
위풍당당한 트랙터가 앞장서고 그 뒤로 하얀 고깔을 쓴 영천문화원 풍물단이 뒤따랐습니다.
영천대행진 추진위원회 이영수 위원장은 도보행진 내내 삼강오략 구호를 외치고 참가자들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하면서 행진을 이끌었습니다. 영천과 인근 지역에서 참여한 많은 참가자들이 '선진국은 농업으로부터!', '교육받고 싶은 곳이 농촌이길', '공공농업 실현하자!', '우리는 환경을 지키는 농민이다' 등의 구호를 적은 손펼침막을 들고 그 뒤를 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의 열기에 추운줄도 모르고 즐겁게 진행된 영천 도보행진이 영천시민회관에서 마무리됐습니다. 도보행진을 준비하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도보행진 후 이영수 위원장의 사회로 오후 3시 40분 경 영천민회가 시작됐습니다.
이날 장내에는 영천민회 시작 전부터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영천아리랑>이 흘러나왔는데요, 일제강점기 만주 등지로 이주한 경상도 농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불러 남한보다는 북한과 중국에서 더 잘 알려진 민요라고 합니다. 바로 이 <영천아리랑> 알리기에 힘쓰는 사단법인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 전은석 회장의 문화공연으로 영천민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영천민회에는 영천과 인근 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참석해 농촌소득 문제, 생태환경, 지역개발, 농업보조금, 다문화가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특히 열심히 농사지어 먹을거리를 생산해도 제대로 된 소득을 얻기 어려운 농촌의 현실에 대한 발언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교직생활 42년 중 27년을 영천에서 지냈다고 밝힌 박선섭 전 교장은 영천지역 초등학교 학생 수가 가장 많을 때와 비교해 현재 20분의 1 정도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며, 이는 사람들이 다 농촌을 떠나기 때문이고 이들이 농촌을 떠나는 이유는 소득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청통면 이창주 농부와 양동열 화남면 귀호2리 이장 모두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살기 어렵다며 유통구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이창주 농부는 농민들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결국 생산비 이하로도 팔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양동열 이장은 마늘 20kg 한 포대를 9만 7천 원에 판매하면 서울 사람들이 30만 원 넘게 주고 사 먹는다며 유통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혼이민으로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지 15년 차인 이소연 님 역시 농촌 소득 문제를 제기했는데요, 그는 농사지어 얻는 소득이 낮아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다문화 가정도 대한민국의 한 구성원이잖아요. 우리도 한국에서 우리 자녀들한테 부끄럽지 않게 잘 살 수 있으면, 이런 2세대 자녀들한테 희망 좀 줬으면 좋겠습니다."
고경면 주민 정상진 님은 "도시는 거대해지고 비만해지는 반면 시골은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며 분배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농지 가격이 계속 상승하면서 농지가 농민들의 손을 떠나 자본가의 손으로 넘어가는 문제의 해법에 대한 조원희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의 질문에 대해 소빈 박진도는 농지 전용을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고 임대료를 규제하는 한편 임차농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도록 땅을 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자양면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고 밝힌 김기종 농부는 농촌 공익직불금 확대를 주장하는 한편, "보조금의 주 수혜자는 저소득 일반 농민이 돼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보조금 기술자'들이 컨설팅을 받고 보조금을 독식하는 실태를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소빈 박진도는 보조금과 지역개발 명목으로 새어나가는 예산만 정비해도 공익기여직불 규모를 현재의 2조 4천억에서 8조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설·운영하면서 찾는 사람이 없어 매년 적자를 내는 경북지역 공공시설 실태에 대한 KBS 보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농민들이 생산하는 생산물이 (예를 들어) 쌀이면 쌀값만큼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며 "홍수를 방지하고, 지하수를 만들고,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 등 논농사를 지음으로써 쌀 생산 이외에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 있지만 시장에서는 그 가치를 가격으로 쳐주지 않으니 국가에서 보상하는 개념으로 공익기여직불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소빈 박진도는 축산농가에 대해서도 "대규모로 하는 공장식 축산은 분뇨나 여러가지 환경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렇다고 축산업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동물복지도 생각하고 환경에도 좋은 축산으로 바꿔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가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친환경적인 축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따르는 농가들의 노력 역시 공익기여직불로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도올 김용옥은 지금의 축산방식은 일종의 기업이라며 이상론이긴 하지만 소규모로 생산된 친환경 축산물이 시장에서 잘 유통되고 그런 농가를 잘 지원해서 농민들이 부업 개념으로 축산을 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농산어촌의 전답을 파괴하여 생태계의 맥을 끊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자양면 정헌호 농부의 질문에 대해 도올 김용옥은 "현 정부가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는 범세계적인 노력에 보조를 맞춘다는 명분만을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지역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업자들에게 맡겨서 될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과의 합의에 의해서 국가에서 책임지고 모든 부작용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무책임하게 (추진해서) 태양광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오염이 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 소식을 듣고 경산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밝힌 김나연 님은 농촌이 겪고 있는 많은 문제에 대해 도시에서 살면서 너무 모르고 있었다며 "농촌사람이 행복해야 도시사람도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화북면 주민 조덕호 님은 "도시와 농촌을 갈라치는 방법으로는 더이상 해결책이 없다"며 도삼농사, 즉 도시에서 3일 살고 농촌에서 4일 사는 방식을 제안하며 "전국토 와이파이 시대가 열리면 도시에 직장도 가지고 농촌에 농사도 지으면서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농어촌에 있는 빈 집과 빈 농지를 도시 청년들이 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독 농어촌 지원법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금호읍에서 온 이진우 농부는 "소중한 밥, 좋은 소고기 실컷 먹고 저녁에 살 빼려고 죽어라고 운동하지 말고 양파 좀 들고 사과밭에 가서 일하면 살이 빠질 것"이라고 말해 청중을 웃게 했습니다. 그는 하얀 피부에 햇빛 안 보는 데서 일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인식을 바꿔 땀흘려 일하는 것의 소중함을 사람들이 알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도올 김용옥은 옛날에 평생 농사지었다고 하는 사람 치고 대석학 아닌 사람이 없었다며 "흙에 배어있는 농민들의 삶을 우리 민족 모두가 하나의 이상으로 여기는 시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공감했습니다.
이날 영천민회에는 영천출신 방송인 김제동 님이 참석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농산어촌 개벽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꿈꾸는 혁명은 높은 데 있는 것들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고, 낮다고 업신여겨져 왔던 것들의 위치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도시를 끌어내리는 게 아니고 낮다고 업신여겨져 왔던 농촌, 산촌, 어촌의 위치를 회복시켜 놓는 것.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고향을 떠나서 사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 그리고 그 두 가지가 이어져 있다는 것."
영천민회가 끝난 후 한 시간 가량 '나의 살던 고향'이라는 제목으로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가 진행됐습니다. 참석한 분들 모두 재밌는 시간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연봉 1억, 4차산업혁명, 6차산업, 스마트농업' 등 현란한 말잔치 속에
농업은 사양산업이 되어가고 있고 농민은 죽어가고 있고 농촌은 병들어 간 지 오래다.
영천민회를 마무리하며 도올 김용옥은 화약을 개발하여 이후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최무선과 정도전에게 맹자의 혁명사상을 불어넣어 준 정몽주의 고향인 영천이야말로 혁명의 도시라고 말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인간의 역사에 대한 낙관을 가지고 언젠가는 개벽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행진을 하면서 배운 것은 울분밖에 없다"며 "이 울분이야말로 이 역사를 낙관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농산어촌 개벽에 대한 영천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담은 '영천 선언문' 낭독 시간을 끝으로 영천민회를 마쳤습니다. 영천 선언문에는 직접지불 확대, 에너지 정책 전환, 마을자치 부활에 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첫째, 최소한 농업예산의 절반 이상을 농민들이 직접 수령할 수 있도록 하라.
둘째,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인정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합당하게 보상하는 공익직불금을 확대하라.
셋째, 지금의 에너지 정책을 당장 중단하고 생산체제를 현재의 개발투기세력이 아니라 주민참여 주민소득과 연계된 정책으로 펼쳐야 한다.
넷째, 마을자치 예산을 확대하고, 농촌 주민 스스로 다원적 기능을 지키고 지역의 운명을 책임지도록 5.16 이후 중단된 읍면동 자치를 부활시키고 마을자치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
- '영천 선언문' 중에서
내년 1월 19일에는 전국 8도 농산어촌 주민들의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으는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 서울행진이 개최됩니다. 서울행진까지 남은 충남(12/9~10), 강원(12/14~15) 행진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12월 9일 아산, 12월 10일 공주와 홍성에서 충남 대행진이 진행됩니다. 전국 대행진의 지역별 민회는 유튜브 '(재)지역재단' 채널에서 실시간 생중계되며, 지역별 대행진 결과는 유튜브 '도올TV' 채널에서 릴레이 방송 예정입니다.
도올TV릴레이 영천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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