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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진 소식

[기고]농산어촌개벽 대행진과 농민공익기여직불

by 국민총행복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 2021. 10. 13.

l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 지역재단 상임고문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권, 1인당 국민소득 3만3,000달러로 명실공히 선진국이다. 그러나 행복하지 못한 경제 선진국,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3농(농어민, 농어업, 농어촌)이 국민을 위한 일·삶·쉼터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소멸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농산어촌을 개벽하여 국민총행복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국 순회 대행진을 시작한다. 지난번 글에서 대행진의 삼강오략(三綱五略)의 대강을 밝혔다. 이 글에서는 첫째 강령인 기후위기에 대응한 농촌을 위한 방략, ‘공익적 직접지불 확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세 가지 직불, 농민공익기여직불로 통합·확대해야

정부는 2020년 5월 쌀소득보전직불제를 폐지하고 이른바 공익형직불제를 도입했다. 한편, 많은 기초지방자치단체와 광역단체들이 앞다퉈 다양한 명칭(농민수당, 농업인수당, 농어민수당, 농어업인수당, 농어민공익수당, 농민공익수당)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2020년 2월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가 창립돼 농민기본소득의 법제화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66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하여 ‘농민기본소득법안’을 제출했다.

농민수당, 공익형직불, 농민기본소득 등은 기본적으로 농어민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제도다. 문제는 명칭은 다르지만 비슷한 성격의 직접 지원이 동시에 논의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혹은 논의되는 세 가지 직접지불제도는 목적, 지급요건, 지급대상 등 세부사항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그 목적이 다르지 않다.

이 글은 위의 세 가지 직접지불을 ‘농민공익기여직불(가칭)’로 통합하여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농민공익기여직불’은 정부의 공익형직불제와 유사한 개념이나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창출에 기여한 농민에 대한 보상’이란 의미를 분명히 한다. 그럼 왜 ‘농민공익기여직불’로 통합돼야 하는가.

농업의 공익적 가치 실현과 농민 소득보전

첫째, 농민수당, 공익형직불, 농민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농업의 공익적 가치 실현과 농민 소득보전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전국 최초로 2018년 12월에「농어업보전 등을 위한 농어민수당지급 조례」를 제정한 해남군은 그 목적을 “농어업인의 소득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업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농어업과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익적 기능 증진(제1조)”을 위한 것이라 하고 있다. 2020년 3월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농어민수당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충청남도는 그 목적을 “농어업 활동이 창출하는 공익적 가치를 보장하고 증진(제1조)”하는 데 두고 있다.

2020년 5월부터 시행되고 있는「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은 “농업·농촌의 공익기능 증진과 농업인등의 소득안정”을 목적으로 한다. 올해 6월 발의된 국회「농민기본소득법안」은 “농업·농촌은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농가소득 감소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히고 있다.

농민수당, 공익형직불금에 농민기본소득까지 지원한다면, 농민들이야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실제로 국회에 제출된「농민기본소득법안」은 “정부의 공익직불금이나 자치단체의 농민수당 지원 외에 농민의 사회적 기본권 보장을 위한 소득안전망 구축(농민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사한 목적을 위해 세금으로 세 가지 형태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직접지불에 대한 국민 공감대 형성 필요

둘째,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농민의 공익적 가치 창출에 대한 보상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들은 왜 농민에게만 수당이든 기본소득을 줘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농민수당, 공익형직불금, 농민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농업・농촌이 공익적 가치를 수행(혹은 창출)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과연 이 전제는 타당한가. 농업・농촌은 본래 공익기능이 있다는 것과 현재 우리나라 농업・농촌이 그러한 공익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이나「농민기본소득법안」을 보면 농업·농촌은 식량의 안정적 공급, 국토환경 및 자연경관의 보전, 수자원의 형성과 함양, 토양유실 및 홍수의 방지, 생태계의 보전, 전통문화의 보존, 지역공동체의 유지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

과연 우리 농업과 농촌이 이러한 공익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우선 가장 중요한 식량의 안정적 공급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주의 농정으로 인한 환경 및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다. 과연 농촌공동체가 살아 있고, 전통문화가 보존되고 있는가.

이러한 상태에서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전제로 해서 농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국민 행복을 위해서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이 잘 발휘돼야 하는데, 현재의 3농 상황으로는 그것이 어렵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증진에 기여하는 농민에게 그 보상으로 현금을 지불(농민공익기여직불)해야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농민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럽연합(EU)의 경우 예산의 70% 이상을 직접 현금으로 지급하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그 비중이 15% 전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농민기본소득으로 직접 지불을 늘려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우리의 직접지불 비중이 낮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연합의 직접지불금은 농민기본소득과 전혀 성격이 다르다.

사회적 공감대 확보 위한 EU의 노력

농정개혁을 선도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은 1992년 농산물의 과잉생산을 억제하고, EU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목표가격과 개입가격을 인하하고, 그에 따른 손실은 소득보상지불에 의해 직접 보상하기로 했다. 이는 농가에 대한 소득지지를 시장가격지지(소비자부담)로부터 직접적인 소득지지(재정부담)로 전환한 것이다.

그리고 「아젠다 2000」은 EU의 공동농업정책을 농업 중심의 부문정책에서 농촌개발 및 환경을 고려한 통합정책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개혁과정을 거쳐 EU 농업예산에서 차지하는 직불금 예산의 비중은 2013년 72%로 증가했다.

그러나 소득보상지불은 대규모 농가에게 편중되고, 농업생산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 EU는 2013년에 소득보상적 성격의 직불제는 줄이고 환경보전을 비롯한 공익적 기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직불제를 개편했고, 2021년 개혁에서는 환경보전과 기후변화 대응을 더욱 강화했다. 소득보상 중심의 직불제가 아니라 농민의 자발적 환경보전 활동 등 공익기여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농민에 대한 직불금 지급의 근거를 소득보상이 아니라 환경보전이나 생물다양성, 경관보전이라는 공익적 활동으로 옮겨간 것은 농민에게 직불금을 지불하는 정당성(사회적 공감대)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국민 추가부담 없이 농민 1인당 평균 월 30만원 공익기여직불도 가능

셋째, 재원 확보를 위해서다. 재원은 새로운 예산을 통해 마련하거나, 기존 예산의 조정을 통해서도 마련할 수 있다.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와 국회「농민기본소득법안」은 농민 1인당 월 30만원씩 지급할 것을 요구한다. 대략 연간 8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의 연간 예산 16조원의 절반에 해당한다. 현재의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국가예산에서 농업예산의 비중을 현재 3%에서 5%로 올려 재원을 마련하면 된다고 한다. 5%의 논거는 전체 인구에서 농가인구의 비중이 4.3%이니, 인구 비중만큼 예산을 배정하라는 거다.

이런 논리는 두 가지 약점이 있다. 우선 농업예산의 비중이 매년 줄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 전체 예산 중 농식품부의 예산 비중은 현 정부 출범 초기인 2018년 3.4%에서 올해 사상 처음 3% 밑으로 떨어졌고, 이대로라면 내년엔 2.8%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농업계는 ‘농업 홀대’를 강하게 비판하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분위기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약하기 때문이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농업계 스스로의 비상한 노력과 공감대가 형성돼야 농업예산의 증액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농가인구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이 논리대로라면 본의 아니게 인구 비중이 낮아지는 만큼 농업예산의 비중 저하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리고 농민을 위한 예산은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전 부처에 들어 있으니(심지어 국방예산도) 농식품부 예산 비중만으로는 따질 수 없다.

새로운 예산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기존 예산을 조정해서 직불금을 늘릴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에서는 2019년 연구용역을 통해 공익형직불금의 예산 비중을 15% 수준에서 2028년에 50% 수준(대략 10조원)까지 점차 늘려갈 것을 제안했다.

농특위는 이를 위한 재원은 2021년부터 농식품부의 매년 늘어나는 예산을 농민공익기여직불금에 사용하고, 현재 생산주의 농정에 사용되는 예산을 구조조정하는 등 연간 평균 1조원을 공익형직불금으로 전환하면 조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연구는 재정지출만 다룰 뿐 조세지출을 통한 농가 간접지원비용은 다루지 않고 있다. (재)더미래연구소(소장 김기식)의「농가지원 재정, 조세지출의 농민기본소득으로의 전환에 관한 정책보고서」(2021년 3월)에 의하면, 2020년에 정부는 ‘소득 직접 지원 재정지출’(약 3.8조원) 이외에 매년 6.2조원을 세금감면 등 조세지출로 지원하고 있다.

농림어업용 기자재 부가가치세 영세율(1조9,400억원), 자경농지 양도소득세 감면(1조6,000억원), 농림어업용 석유류 간접세 면세(1조2,400억원), 기타 비과세·면세 등으로 간접지원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농사용 전기도 저렴한 요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농사용 전력의 소비대체 현상으로 인한 누적 추가비용은 3조2,582억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농 위한 조세지출, 축소·폐지로 예산 확보

조세지출 등에 의한 간접 지원은 그 혜택이 대농 및 수도권과 대도시 인근 농민에게 편중돼 있어, 형평성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고 부정의 온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경농지 양도소득세 감면은 2000년 1,321억원에서 2020년 1조6,005억원으로 1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양도소득세 감면은 농지가격 상승이 큰 대도시권에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양도세 감면을 노리는 부재지주들은 자경을 위장하고, 임차농에게 임차계약서조차 작성하지 못하게 한다. 불법적인 농지소유와 농지질서 문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 농사를 계속하려는 농민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농사를 그만두려는 농민에게 양도소득세 감면을 지원할 명분은 없다. 면세유의 경우에도 필자의 2015년 연구에 의하면 연간 면세 경유를 1만 리터 이상 소비하는 농민은 전체의 3.1%이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면세유의 양은 총사용량의 45.6%를 차지했다.

한편 석유류 간접세 면세는 국제적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철폐가 눈앞에 닥쳐 지속가능하지 않다. 농사용 전기요금제는 영세한 농민의 생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인데, 실제 최대 수혜자는 농산물 수입업체, 대규모 시설재배 및 축산기업농이다.

대농과 대도시권 농민(심지어 가짜농민)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조세지출은 합리적으로 폐지 혹은 축소해 농민공익기여직불로 전환해야 한다. 농민수당, 공익형직불제 예산과 매년 증액되는 농정 예산과 함께, 기존 생산주의 농정 보조금과 조세지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직불금으로 전환한다면, 농정 예산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더라도 최소한 연간 8~10조원의 재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기본소득법안이 상정하듯 농민들에게 매월 1인당 평균 30만원을 공익기여직불금으로 지급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단순히 소득보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행복을 위한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농민의 소득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납세자의 동의를 구할 수 있다. 즉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창출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공익형직불이 아니라 ‘농민공익기여직불’로 명칭 바꿀 것을 제안한다.

농민공익기여직불, 기여도에 따라 차이

농민공익기여직불은 농민기본소득처럼 모든 농민이 같은 금액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공익적 가치 창출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농사를 많이 짓는 농민은 식량공급기능이 크므로 기본형 공익기여직불금을 많이 받을 것이고, 소농이라 하더라도 지역사회 유지와 환경보전이나 생물다양성 증진에 기여하거나 경관 및 전통문화 보존 등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선택형 공익기여직불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규모가 큰 농가와 젊은 농민이 공익기여도가 클 테니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농민공익기여직불을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소농의 소득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고, 소외되는 농민이 있을 수도 있다. 농민기본소득 논자들은 지역균형발전, 농촌소멸에 대응 차원에서도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타당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농민뿐 아니라 농촌주민 전부에 대한 현금 지급이 필요하다. 이런 제 문제들은 농산어촌주민 모두에게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보완할 수 있다. 이는 다른 글에서 다룰 것이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2021. 10. 10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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